공무원 근무 중에 이런 일도

무례한 민원인에게 웃지않고 대하는 (나만 써본) 방법

그래도 나는 2023. 5. 15.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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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에게 '친절의 의무'가 있었던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을 거야, 없었겠지.

거기 앉아 있어 보면 '친절'할 수가 없게 만드는 저쪽이 꽤나 있었으니까.

'봉사의 의무' 그것만은 확실히 기억난다.

맨날 듣던 말이 '공무원은 무조건 주민들에게 봉사해야 한다'였으니까.

그리고 '봉사'하면 추가로 ' 원 플러스 원',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오래된 천생연분 연인이 있었으니, 바로'친절'.

 

음, 친절의 의무 있었네, 있었어.

주는 거 없이 뭘 그리 의무는 많이 지워주는 건지.

 

요즘 불친절한 공무원이 있다던가?

민원인이 갑질하고 사는 요지경 세상에 어디 감히 '공무원'신분으로 불친절을 베풀 수 있단 말인가.

언론에서나 인터넷 기사에서 공무원 갑질을 종종 논하지만 나는 정말 그동안 공직 생활하면서 공무원이 갑질하고 있다는 생각(적어도 내가 근무했던 여러 곳에서는)은 전혀 한 번도 안 했다.

 

편드는 게 아니라 요즘이 어떤 세상이라고?

뛰는 공무원 위에 나는 우주 최강 캡틴 짱 울트라 슈퍼 파워 민원인!

생각해 보면 솔직히 다른 지역으로 일 보러 갔다가 지~~~인짜 불친절한 공무원을 한 명 만나보긴 했다.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지?

난 그 불친절했던 공무원을 아직도 잊지 못하네.

그 불친절한 말투, 태도 아직도 내 가슴속에, 내 서늘한 가슴속에 있네......

 

그 사람은 공무원이 아닐 게야. 공무원이라면 그럴 수는 없어.

공무원이 어떻게 민원인한테 그래?

태어나서 처음 당해보는 공공기관의 불친절에 나는 다음날 사무실에 출근해서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열을 올렸더랬다.

하마터면 나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낼 뻔했지 뭐야.

결론은,

"우리처럼 친절한 공무원은 없다."

"우리가 최고더라."

 

자동차 등록 사업소에 갔었을 때다.

2016년도.

쇼윈도 부부도 서류상은 부부인지라 둘 다 하루 시간을 내서 자동차 등록을 하러 갔을 때였다.

2016년도 봄까지 나에겐 차가 없었다.

면허는 있었다.

운전은 못했다.

차 문을 여는 법은 알았으나 와이퍼 켜는 법은 몰랐다.

 

대학 4학년 때 땄던 운전면허증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해서, 오늘내일하는 판이었다.

공무원 임용이 돼서 자가용의 필요성을 그다지 절실히 느끼지 않았으므로, 버스를 타던 습관이 몸에 배서 불편한 줄도 전혀 몰랐으므로, 여러 번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교통이 아주 안 좋은 편이 아니었으므로 차를 사지 않았고 차 시동을 켤 줄도 몰랐다.

 

남들은 그래도 아이가 있으면 차가 꼭 필요하다는 걸 느낄 거라고 했지만 그때 이미 나의 번뇌들이 둘이나 세상에 얼굴을 내민 후였지만 그래도 난 자가용이 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이 그냥 일을 저질렀다.

무턱대고 저기 저 광역시까지 가서 적당히 타다가 폐차하기 꼭 알맞은 차를 사 와버렸다.

 

시동을 켜는 법도 모르는데 남편이 자동차 등록을 하러 가잔다.

가는 김에 본인 명의의 아파트를 공동명의로 하자면서.

엄밀히 말하면 처음에 별생각 없이, 남편 이름으로 청약한 아파트라 남편 명의가 되었고, 그땐 아파트 명의가 뭐가 중요하냐 싶어 신경도 안 쓰고 살았는데.

세상에 만상에!

주위 직원들은 여직원들 중엔 본인 명의로 아파트를 갖고 있는 사람이 수두룩했으며 최소한 공동명의라도 해 두었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남들은 반만이라도 아파트가 본인 소유인데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말이다. 너무나 청렴결백한 당신.

 

그래서 내가 남편에게

"나도 같이 일해서 대출 갚는 셈인데 인간적으로 공동명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랬더니

"그게 명의가 뭐가 중요해? 아무나 하면 되지."

"그러니까 그 중요하지도 않은 명의에 왜 그렇게 연연하냐고? 그럼 이참에 내 앞으로 해도 되겠네? 차랑 같이?"

"그러든지."

이래 놓고는, 아직도 남편 명의다.

 

어쨌거나 그 당시는 아파트까지 공동명의로 하자고 합의 봐서 그 일까지 처리하기로 한 날이었다.

 

자동차 등록사업소에 가서 서류를 작성하는데,

분명히 한글로 안내돼 있는데 무슨 소린지 도통 모르겠다.

나 한글 아는데.

아휴 정말 민원서류는 왜 다들 그렇게 이상하게 서식을 만들어 놓는 건지.

나도 민원 발급 업무를 해 봤지만, 다짜고짜 어떻게 작성하란 거냐며 볼멘소리 하는 민원인들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자,

Read carefully!

Read and repeat.

그래도 뭘 어떻게 쓰라는 건지 모르겠다.

모르면 물어봐야지, 암만.

 

사람이 앞에 다가가도 쳐다도 안 본다.

"저기요. 이거 어떻게 쓰는 거예요?"

그는  무성의하게 서식에 안내된 그 똑같은 말만 한다.

얼른 알아듣기 쉽게 얘기해 달라고.

"이게 무슨 말이에요?"

또 저만 아는 언어로 답변한다.

게다가 짐짓 신경질적이기까지 하다.

 

"잘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잖아요. 진짜 불친절하네. 내가 잘 알면 알아서 쓰지 물어보겠어요?"

이렇게 내가 말해도  여전히 퉁명스럽다.

놀라워라.

세상에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직접 겪고도 믿기 힘들지만, 설마설마했는데,

'불친절한 공무원이 있었다.'

세상에 사이좋은 부부가 실제로 있다는, 한 번도 확인해 보지 못한,  믿을 수 없는 소문만큼이나 놀랍다.

 

정말 기분 나빴다.

공무원의 의무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민원인 질문에 답변만 하고 신경질은 내지 않을 의무'

신경질을 낼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담당 공무원 입장에서는 얼른 못 알아듣는 민원인이 답답할 수 있겠지만 잘 모르는 사람한테 그럼 안되지.

담당자야 맨날 하는 일이 그거니까 너무 빤하고 쉬운 거지만 처음 그 일을 해보는 민원인은 어렵기만 하다.

 

좀 더 민원인 입장에서 이해해 줄 필요가 있다.

 

의원면직했다고 잔치 잔치 열렸네 아무 말 대잔치.

나도 어느 민원인에겐가 과거 불친절한 공무원이었을 수도 있는 일인 것을.

 

그 직원은 공무원이 아니었을 것이다.

살면서 그렇게 불친절한 공무원은 처음 봤다.

설사 그가 공무원이었다 하더라도 아마도 다음날 날짜로 의원면직이 확정된 공무원쯤?

의원면직 인사발령이 나고 이미 공문으로 다 떠 버린 후에라야 그럴 자격이 있다고 본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이미 멀리 와 버린 후에라야 그럴 자격이 있다.

그 정도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민원인에게 무례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때가 오후 5시가 다 되어 갈 무렵이었으니까 충분히 가능한 얘기지.

그래도 그렇지.

아니, 그럼 안되지.

의원면직만 하면 다야?

순식간에 애먼 사람을 의원면직자로 만들어버린다.

 

기분이 확 상했다. 처음엔.

나도 사람인데 그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태도가 무례한 그 사람 때문에 내가 계속 기분 나빠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오랜만에 '예/아니오' 게임을 한다.

 

※ 본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으므로 글임자의 허락 없이 무단 복제 및 배포를 적극 권장합니다.

 

그 사람과 같이 살 것인가? -> 아니오.

그 사람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인가? ->아니오.

그 사람의 행동으로 내가 내 기분을 계속 망치고 있을 만큼 그가 나에게 가치 있는 사람인가? -> 아니오.

 

답이 나왔다.

무시하면 된다.

가치 없는 일에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그 사람이나 나나 평생 보고 살 사이도 아니고, 한 번 보고 끝날 사이이다.

설사 그 집 아들하고 내 딸하고 먼 훗날에 결혼하겠다고 해서 상견례 자리에서 다시 마주친다 한들 그게 다 무슨 상관이랴, 한 술 더 떠 겹사돈을 맺자고 하더라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미리부터 걱정할 일도 아니다.

 

그런 사이에 뭘 더 기분 나빠하고 계속 마음에 안 좋은 감정을 담아둘 것인가.

나는 더 가치 있는 일에 내 시간을 더욱 많이  써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내가 먼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 나쁘게  행동을 한 것이 절대 아니므로, 신경질적이고 무례하게 나를 대했던 것은 그였고, 그의 태도였지, 내가 아니다.

상당히도 불친절한 그의 태도에 나도 느낀 대로 '불친절하다'라고 말로 표현했을 뿐이지, 내가 욕을 내뱉었냐, 농약을 들고 협박했냐, 악을 지르며 사무실을 엎어 버렸냐?

 

저것들 중 그 어느 것도 나는 하지 않았다.

참 공무원답게 품위 유지를 잘 했구나.

헛살지 않았어.

 

나는 그에게 그냥 정색하고 기분 상한 내 마음을 표현했던 것뿐이다.

그럼 됐다.

그 당시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대처하는 법'을 읽지 않았던 나는 정색하며 대응했다.

공무원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민원인에게 함부로 한단 말이더냐.

그렇게 무례하게 굴어도 기분 상한 표현을 하지 않고 그냥 혼자만 기분 나빠하면 그는 계속 그런 식으로 민원인을 대할지도 모른다.

내 대에서 이 업을 끊어보리라.

 

나는 그 무례함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도로 가져가시오, 그 무례함.

이제 무례함은 여전히 당신의 것으로 명의가 되어 있소이다.

어디서 함부로 나한테 명의이전을 하려고 드는 것이오?

 

민원인을 상대할 때도 정말 정말 무례하다 못해 사람인가 싶은 민원인도 있었다.

그런 민원인 있긴 있더라 정말.

고급 전문용어로 '진상 민원'이라고 한다지, 아마?

 

직접 민원 상대를 하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서 그런지 좀 덜한 느낌이지만(꼭 그렇지만도 않은 건 경험자는 다 알 것임.) 특히나 전화상으로 악질+저질+욕쟁이+안하무인+막가파 민원인을 상대할 때는 나도 처음엔 좀 당황하긴 했었다.

다 순진무구했던 어렸을 때 얘기다.

아직 공직사회의 가 그나마 덜 묻었을 때 말이다.

 

자연스레 진상 민원인이 한 명 떠오른다.

다짜고짜 욕설부터 지껄이기 시작하면 조짐이 좋지 않다고 직감적으로 느낀다.

"나 진상인데 13ㅡㅐㅑ43셔허;ㅠ-46079$%&*#@@^&"

 

'욕설'의 원형.

 

그런 사람들은 대한민국 전 공무원을 먹여 살리시는 대단한 갑부다.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고 사는 주제에 @#%^$&&%&%$&$^*"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품위유지의 의무가 있다.

일단 처음엔 들어준다.

차차 아무 욕 대잔치로 급 상황이 바뀌면 나도 더 이상은 안 듣는다.

저 위의 내용을 복습한다.

 

'예/아니오' 게임을 한다.

 

그 민원인과 같이 살 것인가? -> 아니오.

그 민원인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인가? ->아니오.

그 민원인의 행동으로 내가 내 기분을 계속 망치고 있을 만큼 그가 나에게 가치 있는 사람인가? -> 아니오.

답이 나왔다.

무시하면 된다.

가치 없는 일에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평생 보고 살 사이도 아니고, 한 번 보고 끝날 사이다.

운 좋으면 한 번도 안 보고 끝날 수도 있다.

전화통화만 하고 끝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전화 통화만으로도 안 끝나고 사무실로 열 내면서 쫓아오는 민원인도 있다.

살벌하다.

거기에 대해선 다음번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적당히 들어주다가 이건 좀 심하다 싶으면,

"제가 그렇게 욕을 들을 만큼 잘못한 것은 없는데요?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고 생각되시면 정확히 뭘 어떻게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시겠어요?"

라고 배운 대로 품위를 유지하며 대응한다.

나처럼 대응 안 하는 공무원도 있긴 하다.

전화기 저쪽의 민원인이 잠깐 당황하더니,

더 열받아서 욕을 해댄다.

 

'욕설의 비교급' 출동이다.

"이게 어디서 23946ㅑㅓㅈㄷ0ㄱ3ㅑ05ㅑ2ㅓ어잭2%$**%#@"

 

어? 이상하다? 한국 사람인 것 같은데 한국말을 못 알아듣나?

그렇다면 세계 공용어로 오래간만에 꼬부랑 말을 해 본다.

"Would you please blah blah  blah~?"

 

정말 지은 죄도 없이 당하는 전화상의 욕설의 향연.

당해본 자만이 알리라.

 

여기서 전국 욕자랑 대회 예선전 치르시면 안됩니다.

 

나는 그 초대에 응하지 않겠다.

정중히 사양한다.

 

"이렇게 욕만 하시면 서로 기분만 상하고 서로 좋을 게 없잖아요. 계속 그러시면 더는 통화 못합니다. 다른 민원인도 업무 처리를 해줘야 해서요."

틀린 말은 아니다.

전화상의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시간까지 빼앗아가며 피해줄 권리는 없다.

그 누구한테도 그럴 권리는 없다.

당장 내 눈앞에 시간을 들여서 업무를 보려고 방문한 민원인도 내겐 소중한 민원인이다.

그리고 때마침 잘 됐다.

핑곗거리가 아주 좋잖아.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남의 귀한 시간 도둑질하지 맙시다.

 

중간중간 요령껏 수화기를 내려놓고 내 앞에 찾아온 민원인 업무를 간간이 처리한다.

욕설이란 건 대개가 다 듣고 있을 만큼 가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그렇게 믿고 있으므로.

내려놓은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그 아름답지 못한 언어에 내 앞의 민원인이 다 얼굴을 찌푸린다.

이때 주의할 점은 전화기 저쪽의 민원인에게 받았던 불쾌한 감정이 눈앞의 민원인에게 전이되지 않도록 더욱더 상냥한 태도를 취할 것.

평소의 나는 친절한 공무원이니까.

 

급기야 전화상의 민원인은 폭발한다.

나올 것이 드디어 나왔다.

아뿔싸, 내가 자신의 말을 안 듣고 있단 걸 눈치챈 듯하다.

 

'욕설'의 최상급.

"야! 너!*&^ㅛㅑㅠㅛㄹㅏ헣잳사작@$^*^*%$#&$*"

이제 더 이상은 없다. 최상급까지 동원된 마당에 뭘 더 바라?

그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내가 없다면 없는 거다.

헤어질 시간이다.

비로소 나는 그 민원인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시는 공무원 민원인 사이로 만나지 마요~

전화상으로라도, 행여.

 

그럼 나는 이제 그만 마무리할 의무가 있다.

"계속 그렇게 욕만 하실 거면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아니, 지금 내가 얘기하고 있는데 어디서 버릇없이 전화를 끊어?"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지.

"군수실 대! 너 이름 누구야?"

 

"처음에 전화받자마자 소속과 이름 밝혔는데 그때 안 듣고 뭐 하셨어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받아 적으세요. 한 번 말할 때 제대로 듣으시라고요. 나 바쁜 사람이라고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에게 일관적으로 욕만 해대는 그 사람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관둔다.

 

항상 저런 부류의 민원인은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니, 결국엔 단체장 타령이다.

군수 찾는 사람 치고 현직 군수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더라.

 

"네, 글임자입니다. 돌려드리겠습니다. 혹시 중간에 끊어지면 111-1111번으로 다시 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럴 땐 난 정말 공무원 체질 같단 말이야.

 

공무원의 의무 중 무려 세 가지나, 성실, 복종, 친절의 의무를 다했다.

뿌듯한 날이다.

(2022.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