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유세 떠는 방법

"그만 좀 유세 떨어. 한두 번도 아니고 걸핏하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남편은 현관에서 주춤했다.
이내 얼굴색이 변하고 잔뜩 인상을 쓰고 냉기가 돌았다.
"내가 날마다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모르고. "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기나 해?"
"지금 내가 웃고 다니니까 좋아서 그러는 줄 알아?"
"출근해서 날마다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나 알아?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줄은 모르고."
"이젠 일도 안 하는데 어떻게 알겠어?"
"이렇게 조직생활을 몰라!"
"하긴 일도 안 하는데 알 리가 없지."
"요즘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기나 해?"
부부공무원이었던 맞벌이 시절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작년에 내가 일을 그만둔 후로부터는 자주 듣게 된 말이다.
물론 원성의 마음은 덤이다.
그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저런 말들은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누군가가 했던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도 안다.
왜 몰라?
잘은 몰라도 알긴 알아. 혼자 고생하고 애쓰는 거 알고 있어.
다만 매번 그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내가 그 사람의 고된 직장생활이며 혼자서 느끼는 부담감 그런 것들을 모른다면 양심도 없는 거지.
그리고 바로 옆에서 매일 보는데 절대 모를 수가 없지, 어떻게 그걸 모르겠어?
게다가 매번 직접 저렇게 말로 다 하시는데...
"내가 왜 몰라? 다 안다니까? 날마다 내가 고맙다고 절하면서 그러고 살아야 돼? 말로 안 한다고 모르는 거 아니라니까!"
"알기는 뭘 안다고 그래?"
매번 거의 이런 식이니 항상 제자리걸음이다.
나라고 왜 그 사람이 안쓰럽지 않겠는가.
나 때문에, 내가 그만두는 바람에 자신의 계획이 다 틀어져 버렸다며, 생각지도 않은 새 출발을 하고 전혀 낯선 경험을 하고, 지금 이렇게 고생하며 살고 있다고 대놓고 말하는데 절대 모를 수가 없잖아.
진심인데, 정말 알고 있어.
하루는 그 사람이 퇴근을 하고 왔는데 감히 내가 '현관까지 나가보지 않았다.'
"이 사람이. 남은 고생하고 일하고 왔는데 내다보지도 않고 말이야."
사건의 발단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내가 낮잠 자느라 안 나가봤나 부엌에서 저녁 준비하느라 그랬지.
그 사람은 유독 '현관까지 나와서' 가장을 맞이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른 할 일이 없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고, 무언가 하던 일이 있었다면 그 순간을 놓칠 수도 있는 거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그 가장은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가장이 퇴근하고 돌아오시면 만사 내팽개치고 달려 나가야 하나?
호들갑을 잔뜩 떨면서
"오늘 하루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 난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스트레스도 안 받는데 혼자만 그렇게 고생해서 어떡해?"
이런 말이라도 매일 퇴근길에 해야 하는 걸까?
말로 번지르르하게 사람을 추켜 세워주는 그런 성격이 아닌 나는, 내 선에서는 내가 할 일을 함으로써 상대의 노고에 보답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생각이 달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고생한 가장을 위해 새 밥을 지어 차려 주는 일로 그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가장은 다른 건 모르겠고 퇴근하고 오는 사람에게 만사 제쳐놓고 달려와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쩌면.
일주일 내내 온갖 스트레스 속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가장을 맞이하는 방법,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긴 하다.
그가 원하는 것도 그리 대단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 같다.
뭔가 보여줄 때가 왔다.
그래서 요즘엔 퇴근 시간이 되어가면 최대한 현관 가까이에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