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지) 않(은) 남매

여름 방학 때 이거 하자

그래도 나는 2023. 7. 21.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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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방학 때는 뭘 하면서 보낼까 얘들아?"

내가 물었다.
"놀아야지."
딸이 말했다.
"그래야지."
아들이 말했다.
"엄마랑 하고 싶은 걸 다 적어 보자."
내가 말했다.
 
한 달 동안 또, 고난의 가시밭길을 나는 걸어야만 할 것이다.
 
"너희는 이번 여름에 뭘 하고 싶어? 수영은 일주일에 두 번만 가니까 시간이 정말 많을 것 같은데."
물어보나 마나 아이들은 '실컷 놀기'라고 대답할 게 뻔했지만, 예의상 한번 물어는 봤다.
역시나 나와 아이들의 이상적인 여름방학은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나는 최대한 많이 몸을 움직였으면 했는데, 아이들은 최대한 정적인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우리 아들은 설거지해보고 싶다고 전부터 그러더니 이참에 한 번 배워볼래?"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들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싫어!"
"합격이는 요리하고 싶어 했잖아. 엄마한테 요리 좀 해 주라."
그래도 딸은 다를 거라고 기대하고 물었다.
"꼭 해야 돼?"
어? 이게 아닌데?
내가 느닷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평소에 아이들이 해보고 싶다는 것을 한 달 동안의 시집살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교육해 볼까 했는데 마치 남매는 우리가 언제 그런 말 입이라도 뻥끗한 적이 있느냐는 표정들이었다.
시치미를 뚝 떼고 엄마가 제안한 많은 일들에는 전혀 관심 없어했다.
 
나는 아무것도 안 바란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프랑스 자수도 다시 시작해 보고, 드론 비행 연습도 많이 하고, 딸이 관심을 보였던 수채화 그리기도 도전해 보고, 양가 조부모님들께 안부전화도 종종 드리고, 평소 하던 일은 하던 일대로 쭉 이어나가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 그것밖에는.
나는 아무것도 안 바란다. 
정말 아무것도 안 바란다.(라고 하면서 자꾸 리스트를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아니다.
아무것도 안 바라지만 이것 하나만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요즘, 특히 아들이 버릇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좀 보였다.
나와 남편은 그런 일에 관대하지 않다.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밖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백 점 짜리 시험지를 받아 오면 뭐 하나.
버릇이 없으면 다 소용없지.(물론 기분은 좋긴 할 것이다.)
다방면에 골고루 재능이 있어 '뭐든지 잘한다'고 칭찬 들으면 뭐 하나.
혼자만 잘난 줄 알고 기고만장한 어린이가 된다면 다 소용없지.(물론 여러 가지 재능이 있다는 건 축복이긴 하다.)
활발하고 리더십 있고 친구들에게 인기 있으면 뭐 하나.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예의 없이 군다면 다 필요 없다.(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리더십씩이나 있다는 칭찬을 듣는다면 절로 으쓱해지긴 할 것이다.)
아니다. 

다 소용없다.
버릇없는 행동을 하는 어린이는, 예의를 모르는 어린이는 우리 집에서 키울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어린이는 키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는 안 키울 것이다.(라고 굳게 결심하지만 자식 일이란 게 어디 또 다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더란 말인가.)
 
모든 교육의 시작은 가정이라고 믿는다.
'예의 바른 어린이 만들기' 프로젝트를 소홀히 할 수 없다.

가정에서 부모가 예의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누가 어디서 가르쳐주랴?
최소한,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도리는 하고 사는, 양심 있는 어린이로 자라길 바라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
진단평가 100점을 받는 일보다도 더 중요하고 절실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래, 이걸로 정했어.
2023년 여름방학 슬로건을 공개한다.
'예의 있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어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