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지) 않(은) 남매

아들과 라푼젤

그래도 나는 2025. 7. 7. 18:23
반응형


"엄마, 나도 기부할 거야."

"그러면 적어도 4, 5년은 길러야 할 텐데?"
"기르지 뭐."
"뭐? 정말?"
 
아드님이 진지하게 대답하셨다.
나는 진지하게 심각해졌다.
"엄마한테 50cm짜리 자 좀 갖다 줄 사람?"
분명히 거실 책장에 그 자가 있다.
거기까지 가는 게 귀찮아서 나는 남매에게 슬쩍 얘기해 봤다.
예전 같으면
"엄마, 내가 갖다 줄게."
라고 딸이 말하면,
"아니야. 내가 갖다 줄 거야. 누나! 내가 갖다 줄 거야!"
라며 아들이 기어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그 어떤 물건들을 쟁취해 내게 전달하였을 것이다. 마치 누나를 제치고 자랑스럽게 획득한 전리품처럼.
그러나, 지금은, 클 만큼 컸고 하잘 것 없는 심부름에 그렇게 안달 나서 서로 나서겠다고 할 것까지도 없는 일에 남매는 서로 미루고 있다, 사이좋게도.
잔머리 좀 굴려보다가 결국 내가 그 자를 찾아냈음은 물론이다.
하긴, 나도 귀찮은 일을 저 어린것들이라고 하고 싶을까.
"얘들아. 길이가 얼마나 되는 것 같아? 이젠 많이 길었지?"
그 기다란 자를 귀 밑에, 딱 '0'지점(이라고 추측되는) 자리를 귀 밑에 바짝 붙이고 욕실로 들어가며 내가 말했다.
"엄마, 진짜 많이 길었다. 이제 기부해도 되겠는데?"
아들이 드디어 호기심을 보였다.
"그치? 길지?"
이쯤 되니 딸도 슬슬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젠 잘라도 되겠는데?"
딸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의 눈금을 읽었다.
"30 넘었는데?"
머리 길이가 일정하진 않지만 30cm가 넘는 머리카락도 있었다. 물론 그게 못 미치는 길이의 그것도 있었고 말이다. 그러니까 얼추 25cm 안팎은 되겠다 싶었다.
"대충 25는 확실히 넘었겠지?"
"응. 근데 왜?"
"최소한 25는 돼야 기부할 수 있다고 한 것 같아서 말이야."
나는 작년에 (내 나름대로는) 큰 결심을 했다.
'어머나(어린이 소아암 머리키락 나눔) 운동본부'에 내 머리카락을 기부해야겠다고.
어느 날 새벽에 '입이 트이는 영어'를 듣다가 충동적으로 결정한 일이다.
그날 방송 내용이 그것에 관한 것이었다, 운명적이게도.
나는 작정을 하고 머리를 기르는 중이지만, 아들은 지금 무슨 생각으로 머리를 기르고 있는 줄 모르겠다.
"우리 아들, 머리가 많이 길었네. 이번 주엔 이발하자."
내가 이 말을 할 때마다 아들은 자꾸만 미루고 있었다.
전생에 갖바치라도 됐었단 말인가.
느닷없이 '갖바치 내일모레' 이 표현이 생각났다.
생뚱맞기도 하지, 나도 참.
"엄마, 다음 주에. 그렇게 많이 안 길었어."
아니, 그렇게 많이 길었다.
"날씨도 더운데 안 답답해?"
"응. 안 답답해."
이런, 내가 할 말이 없네."
"좀 지저분해 보이잖아. 자르자."
"하나도 안 지저분해."
나는 아들의 그 머리카락을 자르고만 싶다.
솔직히 (물론 내 생각이긴 하지만) 머리가 많이 길었다.
인간적으로 이발한 지 3주가 넘어가니 (물론 이것도 내 생각이긴 하지만) 뒷머리도 지저분해 보였다.
고분고분 말을 들을 것 같지가 않았다.
"우리 아들, 이발하면 더 멋있어질 것 같은데. 이번 주말에는 자르자. 응?"
"괜찮아, 엄마. 난 머리가 길어도 멋있으니까."
"그래도 이젠 자를 때가 됐다니까."
"엄마, 나도 엄마처럼 머리 길어서 기부할래. 그럼 되잖아."
그런 기특한 생각을 다 하시다니.
역시 내 아들이구나, 싶었다. 싶었는데 가만, 그러자면 머리를 자를 수가 없잖아?
"그거 쉬운 거 아니야. 엄마가 단발머리에서 지금까지 거의 3년 넘게 기르고 있잖아. 이것도 쉬운 거 아니야. 넌 엄마보다 더 머리가 짧잖아. 최소한 4년 이상은 길러야 할걸?"
솔직히 2년이 넘었는지 3년이 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수학에 약한 나지만 현재 아들의 머리가 긴 편이라고는 해도 나만큼 머리가 기르려면 정말 넉넉 잡아 5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기르면 되지."
"불편할 텐데?"
"괜찮아."
"여름에 얼마나 덥고 불편한지 알아?"
난데없이 선량한 마음의 기부 천사(를 빙자한)는 오간데 없고 나는 그 머리카락 기부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이 쉽지. 몇 년 동안 긴 머리로 살려면 쉽지 않다니까. 네가 안 해 봐서 그래."
"할 수 있어."
"그러지 말고 자르자."
"나도 기부할 거야."
"그럼 어떻게 관리할 건데? 머리 묶고 다닐 거야?"
"가르마 타면 되잖아. 가르마 타서 옆으로 넘기면 돼."
그러나, 아들이 아무리 가르마를 타서 양 옆으로 앞머리를 넘기려고 해도 대쪽 같은 선비만큼이나 꼿꼿한 직모의 유전자를 제대로 물려받은 무정한 앞머리는 다소곳하게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어? 잘 안 되네?"
아들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잘 안되잖아. 너 그렇게 머리가 내려와 있으면 이제 앞도 안 보여. 머리 묶고 다닐 거야?"
"괜찮아."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건지.
난 전혀 괜찮지가 않은데 말이다.
"우리 아들, 이번 주가 이발하기로 한 주말이지? 이발하자."
"엄마도 힘든데 괜찮아."
아들 이발은 내가 직접 해 준다.
갑자기 효자 나셨다.
효도는 다른 쪽으로 받고 싶다.
"엄만 하나도 안 힘들어. 하자."
"날도 더운데 엄마 고생하잖아."
"엄만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다니까!"
가위질을 하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가위질을 하다 손을 베는 한은 있을 테지?) 그 거슬리는 까만 머리카락을 잘라내고만 싶다.
아들이 저렇게 반항을 하니(이것도 반항이라면 일종의 반항이다.) 내 마음대로 잘라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는 도중에 몰래 도둑 이발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물론 나는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솔직한 마음엔.) 답답하다.
그 까맣고 윤기 나는 그것이 내 앞에서 찰랑댈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저걸,
어떻게 해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