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지) 않(은) 남매

나의 주말과 너의 주말

그래도 나는 2025. 6. 1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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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오랜만인 것은 맞는데, 그 사이의 몇 달도 몇 시간처럼 짧게만 느껴진다.

이런저런 일도 있었고, 무엇보다 더 신경을 좀 써야 할 일도 있었고 몸도 추슬러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있었고, 뭐 핑계를 대자면 말이다.
주말이지만 나만 주말이 아닌 주말이다.
지금 이 순간 나머지 세 멤버는 모두 주말을 만끽하는 중인 것 같다.(고 또 나만 지극히 주관적으로 느끼는 토요일이다.)
하필이면 꼭, 늦잠 자고 싶은 주말 아침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수선을 피우시는 그 양반은 오늘도 어김없이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일찍 일어난(오전 8시가 꼭두새벽은 물론 아니지마는 나는 꼭두새벽이라고만 우기고 싶다.) 티를 내셨고, 예민한 성격(이라고 언제나 우기는 그 양반의 말에 따르면)인 나는 다른 방 문을 여는 소리에도 자다가 깨는 바람에 그 양반의 새벽 기상이 언제나처럼 탐탁지 않다.
아침부터 남매는 방에 들어가서 느닷없이 맞춤법 퀴즈 삼매경에 빠졌고, 내가 늦잠 따위는 절대 못 자도록 훼방 놓기 위해 일부러 주말마다 일찌감치 기상하는 것은 아닌가 싶게 의심스러운 행동을 마다하지 않는 그 인간은(앗, 이성은 그 양반이라고 쓰라고 하는데 본능이 그 인간으로 입력해 버렸다... 고 소심하게 또 변명하고 있다.) 혼자 볼 일 다 보시고 마음껏 드시고 실컷 나의 늦잠을 훼방하고 다시 주무신다.
딸은 갑자기 마이크를 집어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제 누나 옆에서 아들은 정말 오랜만에 뜬금없이 그림을 그리신다. (이 중에 당분간 나를 귀찮게 할 멤버는 없겠군.) 난데없이 그림을 그리겠다고 방바닥에 쭈그리고 그림 그리기에 한창이다.
물론 자세야 불편하긴 하겠지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림 그리기에만 집중해서 오랫동안 그 방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본다, 아들 몰래. 이 글이 부디 아들에게는 발각되지 않기를...)
...라고 은근히 기대하는 이 순간, 꿈도 야무지게 바라는 게 큰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아드님이 누나 방에서 탈출하셨다.
"아, 목 아프다. 좀 쉬어야겠어."
30분도 안 한 것 같은데 말이다.
엄마 생각 같은 건 안중에도 없나 보다.
"엄마, 어때? 내가 그린 거? 사진 찍어야지!"
이젠 대 놓고 내게 요구한다.
전에 살짝 호들갑을 떨며 뭘 그리거나 만들 때마다 과잉반응을 보이며
"우리 아들, 엄마가 이거 다 찍어 놔서 평생 보고 또 봐야겠다."
라고 섣불리 말했던 과보다.
걸핏하면 나보고 찍으라고 하신다.
"이거 진짜 똑같이 잘 그렸다.(그러나 내가 말해 놓고도 어디가 어떻게 똑같은지는 모르겠다고 양심 고백 하는 바이다.) 우리 아들 점점 그림을 잘 그리는 것 같네.(=그러니 어서 서 너 시간만 더 그림 그리기에 열중해 보렴.) 다른 것도 또 그려 줘.(=그래야 엄마가 혼자 좀 쉬지.)"
"그래? 알았어!"
잽싸게 다시 제 누나 방으로 들어가시는 아드님, 도대체 본인 방을 놔두고 거실도 놔두고 왜 굳이 누나 방으로만 들어가시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자리만 비켜 주신다면야 나야 고맙지.
새로 김치를 담그려고 배추 간한 것을 한 번 물로 헹궈내고 채반에 받쳐놓고 조금만 더 있다가 있다가 미루면서 나도 좀 혼자 쉬어 보자, 혼자 있고 싶다,고 또 꿈도 야무지게 바라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나름의 여유라면 여유겠지만 시간을 보니 어느덧 또 점심시간이다.
이런!
시계를 괜히 봤어...
 
그나저나 군대 영장은 언제나 나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