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면직-일반행정 지방직 아내의 공무원 그만두기

공무원 그만 둔 거 후회하지 않는다니까 그러시네

그래도 나는 2023. 7. 16.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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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 동안의 육아휴직 기간에 이미 몸에 배어버려 내 직업이 공무원인지 농사꾼인지 헷갈릴 만큼 전원생활에 길들여져 버렸다. 

직원들이 나보고 '육아휴직을 한 거냐 농사 휴직을 한 거냐'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낭만적으로 들리는 전원생활이지만 미친 듯이 바쁜, 현실에서의 농촌 생활은 정말이지 미치도록 바쁘고 일도 많고 힘들기도 하다.

특히나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턱턱 막히는 요즘은 그 고단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시는데, 육아 휴직을 하면서 아이들이 시골에서 좀 놀아 봤으면 싶어 거의 매일 친정에 가다시피 했었다. 

운전해서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친정이 있다는 것은 내가 받은 복 중에 최고의 복이다.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부터는 우리 아이들은 거의 그곳의 원주민 수준이었다.

온라인 수업도 외가에서 종종 받았던 아이들이다. 

이젠 제법 컸다고 온갖 회유에도 불구하고 잘 따라나서진 않지만 6살, 8살이던 시절에는 외가 가서 자고 오는 게 소원일 만큼 좋아했었다.한여름 이글거리는 땡볕 아래에서는 성인군자도 어찌할 수 없으리.

 

나이도 먹어가고 내가 본격적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 옆에서 조금씩 돕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그마저도 힘에 부칠 때가 있다. 

농사도 일단은 몸이 건강하고 튼튼해야 유리하다.

무엇을 하든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올봄에도 한창 농번기철에는(우리 집이 과연 농번기 아닌 때가 있었던가?)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난 후 살림(이랄 것까지도 없는)은 육아휴직 중인 남편에게 맡기고 친정에 가서 논, 밭을 순찰하며 일을 거들었었다.

어떤 근무 환경이 됐든, 무슨 일을 하든, 둘 중 한 명이라도 벌어야(?) 했다.

부모님은 나를 가장 많이 고용해 주시는 모범 고용주인 셈이다.

 

해가 지고 나서야 지쳐 돌아오면 남편이 으레 묻는다.

"솔직히 공무원 했던 때가 그립지 않아? 후회될 것 같은데. 그래도 공무원이 농사짓는 것보단 낫잖아. 이렇게 더운데 밭에서 그게 무슨 고생이야? 시원한 사무실에서 에어컨 바람 아래서 일하는 게 더 좋지?"

"그립진 않아. 농사짓는 거 물론 힘은 들지. 하지만 그렇게 고생스럽지는 않아. 그때나 지금이나 나름의 고충은 있는 거고, 후회할 거였으면 퇴직도 안 했을 거라니까?"

"그래,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힘들긴 하지? 그래도 공무원 하던 때가 더 좋지 않아?"

"더 좋고 안 좋고는 없어. 내가 하루 종일 일 년 내내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 가지고 힘들다고 하면 다른 일도 아무것도 못 해."

다른 일을 뭔가 해보겠다는 결심 같은 건 지금 없는데, 건강해지기부터 해야지.

어쩌면 내가 건강해지는 방법으로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것저것 하면서 시골살이하고 순간순간을 본능적으로 사는 게 건강을 회복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많은 주인공들의 마음을 알겠다.

 

남편은 종종 나를 시험한다. 

나중에 분명히 공무원 그만둔 걸 후회하게 될 거라고. 

내가 성급했다고. 

본인이 더 야단이다. 

당사자인 나는 정작 별 감정이 없는데 말이다.

"본인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지 마. 내가 후회할 거라는 건 순전히 본인 생각이지. 꼭 내가 후회하길 바라는 사람 같네?"

"하여튼 자긴 희한한 사람이야. 보통 사람들 같으면 후회했을 텐데. 공무원 그만두고 농사일 거들러 다니는 거 보면."

"보통 사람, 보통이 아닌 사람의 문제가 아니야. 그냥 사람 사는 방식이 다 다를 뿐이라고. 당연히 후회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후회 안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거지. 어떻게 사람 마음이 전부 같을 수 있겠어."

"어쨌든 대부분이 하지 않을 그런 행동을 하니까 그렇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걸 모르지, 어떤 느낌인지. 물론 한여름이라 너무 더워. 고추꽃이 그렇게 예쁜지 난 처음 알았어. 청개구리가 숨 쉬는 거 옆에서 자세히 본 적 있어? 수세미 씨를 심고 물 주고 싹이 트는 걸 본 적 있어? 어쩌면 그 단단한 껍질을 뚫고, 땅 속에서 돋아나는지 볼 때마다 신기해.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익어가는 것들이 다 신기하기만 해. 봄에 일하러 갈 때는 사방에 꽃이 피어서 꽃놀이 따로 안 가도 되겠더라니까.(그렇다고 이 말을 적극 인용해서는 안 되는 거 알지?) 밭에 있으면 대숲에서 새들이 그렇게 노래를 많이 불러 줘. 세상에 이런 근무지가 어디 있어? 물론 4대 보험 적용을 못 받는 건 아쉽긴 하지만 말이야.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이 정도면 완전히 지상낙원이야. 일할 때도 오디오북 들으면서 하면 하나도 안 지루해. 어젯밤에 창문 열고 운전하는데 풀벌레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더라. 밤바람도 정말 시원하고."

 

"하여튼 희한해......"

"자긴 유연근무제 못하지 아직도? 난 항상 유연근무하잖아. 우리 집은 복지가 그렇게 잘 돼 있다니까. 월급이 없는 게 치명적인 약점이긴 하지만 그래도 식비는 거의 안 들잖아 부모님 덕에.이런 직장도 드물어."

"희한해 희한해."

그다음에 생략된 말은 아마도

"멀쩡한 공무원 그만두고 지금 밖에서 무슨 고생이야?"

겠지.

남편에겐 내 행동이 철없어 보일지 모른다. 

어린아이가 주말농장 하면서 체험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어른이 저게 다 무슨 뚱딴지같은 감상이란 말인가 하고.

아직도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건가 남편은.

 

저 모든 것이 나는 진심이다.

이렇게 사는 게 좋다. 

웃음이 난다.

나는 좋다, 누가 뭐래도.

아프다고 맨날 방안에만 드러누워서 기운 빼고 있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나는, 괜찮다.